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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공간/자유공간

1919 ~ 1940 사이 힘의 분포


1919년

 

소련 : 혁명, 볼셰비키의 승리가 있었지만, 그 이후 세계 외교 무대에서 배제되었다.

 

독일 : 베르사유조약, '전범'과 전쟁배상금은 적개심을 불러왔지만  충분히 가혹하지는 않았다. 독일은 1914년 이전 국경선 안쪽 영토를 거의 잃지 않았고, 강력한 러시아라는 적이 사라졌으며, 동부와 중부 유럽에서 인접한 국가들은 국내에서 민족체 문제로 분열된 허약한 나라들뿐이었다.

 

미국 : 베르사유 조약 비준의 실패 이후 유럽 문제로부터 물러나게 되었다.

 

프랑스 : 150만이 죽고 100만명이 부상당했다. 30세이하 모든 남성의 1/4이 사상을 당한 것이다. 더구나 독일은 패배 이후에도 1/3이나 프랑스보다 인구가 많았으며, 독일 동쪽에는 쓸만한 동맹국이 존재하지 않았다.

 

영국 : 중동에서 제국을 확장했지만, 1차대전에서 미국에게 막대한 빚을 지게 되었고, 국가부채도 11배 증가했다. 영국은 결국 1919년 해군군비 경쟁에서 우위전략을 포기하고 3년후 워싱턴 해군회담에서 미국과 영국이 동등한 해군력을 유지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일본에게도 3/5 정도라는 국지적 지배력을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미국이 일본과의 협력관계를 끝냄으로써 영국은 일본을 잠재적 적대국으로 다루어야 하는 부담을 추가로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1930년대 초

 

일본이 만주 침공, 히틀러가 독일에서 권력 장악

 

영국 : 세계의 1/4 지배 하지만 세계 공업생산량의 10%도 차지 못함. 부채와 경제 불황

         미국은 고립주의. 프랑스는 1차대전의 피해를 회복하지 못했다.

         일본과의 협약(중국에 대한 지배권)은 미국이 싫어했기 때문에 버릴 카드였다.

         주로 독일을 겨냥해 영국은 재무장을 시작했고 그동안은 가능한 분쟁지연과 외교적 해결책을 찾아야 하였다.

         이탈리아가 독일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도 악재중 하나가 되었다.

 

영국의 재무장 , 특히 해군과 공군은 막대한 비용이 들었고, 미상환 채무 때문에 미국으로부터의 차관도입도 어려웠다.

최근 밝혀진 공식 추산에 따르면 영국의 금과 외환 보유고가 기껏해야 3년정도 전쟁 지탱수준이었음. 그런데 군사전문가들은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을 이기려면 최소한 3년은 걸릴 것이라고 하였다. 

전쟁없는 지속적 재무장은 재정을 더 고갈시킬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영국은 취약해질 것이었다.

1939년 초 영국의 상황은 이러했고, 영국은 전쟁이 일어나면 잃을 것 밖에 없는 처지였다. (뮌헨 회담에서 더 나은 방법도 없었다. ) 유일한 희망은 이탈리아,일본이 중립인 상태에서 독일과 제한적이고 비교적 짧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뿐이었다. 

 

 

독일 : 1936년 라인란트 지대로 군대 파견. 1939년초 오스트리아 합병. 1938년 9월 말 뮌헨회의에서 주데텐란트 접수

 

 

히틀러는 모든 문제를 군사력을 사용하여 해결하려고 했는데 이것은 영국에게 기회를 준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1939년 8월말 히틀러가 소련과의 합의를 통해 제한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1940년대 초 전격적인 군사적 점령을 하게 된 결과 영국-프랑스의 독자적인 승리는 날아가 버렸다.

 

1940년대 말 영국의 재정자원은 고갈되었다. 영국이 독일,이탈리아에게 패배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미국이 무상재정지원,원료,군수품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1940년 여름과 가을 가장 적절한 침공시기를 놓치고 1941년 공격을 시작하였다. 너무 늦게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일본은 중국하고 너무 오래 전쟁을 하고 있었다. )

 

 

 

미국 : 1930년대 말 미국은 불황때문에 철강공장의 2/3가 가동을 중단했지만 독일보다 30%나 많은 철강을 생산했다.

 국부의 1%만을 방위에 지출했고, 해군은 강력했지만, 육군은 왜소하고 장비도 낡았으며, 공군력도 마찬가지였다.

1939~41 급속한 재무장(방위비 지출이 국부의 11%)과 전쟁 동안 진행된 자원의 대량 동원으로 상황이 변했다.

 

미국은 태평양과 유럽 모두에서 싸울 대규모 군대를 만들었고 1944년 세계에서 생산된 모든 무기류의 40%와 연합국 산출량의 60%를 생산했다.

 

1945년 미국은 1200대의 전함, 3000대의 중폭격기, 유럽에 69개사단, 태평양에 26개 사단, 원자폭탄의 유일 보유국이었다.

세계 공업 산출량의 절반을 생산했고, 세계 금의 2/3 를 보유했다.

 

독일,일본,이탈리아는 파멸하였고, 프랑스는 패배와 점령이후 쇠퇴하였다. 영국도 승리하였지만 경제가 파산지경이었다.

소련은 1300만명의 군인이 죽었고, 민간인도 3500만이 죽었다. 전전인구의 약 1/4. 소련 서부 전역이 파괴되고, 자본적 자산의 1/3을 소실했으며 총 전쟁비용은 전전의 10년치 경제산출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