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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몰락과정과 영국의 지배방식 인도의 제 3세계편입 포르투갈의 진출 -> 네덜란드 -> 영국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진출할 때까지도 인도의 왕국들은 강력하여 병합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무굴황제나 술탄이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를 무찌르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인도양의 나라들의 분열(이슬람교와 힌두교간의 적대감정도,,), 약한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 하급지도자가 모병하여 상급수장 휘하에 들어가는 군대시스템 때문이었다. 이당시엔 인도보다 동인도가 훨씬 이윤을 창출해서 네덜란드가 동인도를 지배하자 쫓겨난 영국은 인도에서 강력한 무굴제국의 허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동인도회사 조시어 차일경은 인도에서 침략정책을 추구하여 심지어 무굴제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였는데 그 결과는 참담하여 벵골지방 동인도회사는 잠깐 동안에 유린되었으며 조시어경은 화평.. 더보기
1919 ~ 1940 사이 힘의 분포 1919년 소련 : 혁명, 볼셰비키의 승리가 있었지만, 그 이후 세계 외교 무대에서 배제되었다. 독일 : 베르사유조약, '전범'과 전쟁배상금은 적개심을 불러왔지만 충분히 가혹하지는 않았다. 독일은 1914년 이전 국경선 안쪽 영토를 거의 잃지 않았고, 강력한 러시아라는 적이 사라졌으며, 동부와 중부 유럽에서 인접한 국가들은 국내에서 민족체 문제로 분열된 허약한 나라들뿐이었다. 미국 : 베르사유 조약 비준의 실패 이후 유럽 문제로부터 물러나게 되었다. 프랑스 : 150만이 죽고 100만명이 부상당했다. 30세이하 모든 남성의 1/4이 사상을 당한 것이다. 더구나 독일은 패배 이후에도 1/3이나 프랑스보다 인구가 많았으며, 독일 동쪽에는 쓸만한 동맹국이 존재하지 않았다. 영국 : 중동에서 제국을 확장했지만,.. 더보기
베트남,알제리는 어떻게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는가? 알제리의 독립은 베트남과도 연결되는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단히 베트남 독립에 관련되어 살펴보고자 한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베트남은 프랑스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재래식 접전에서 프랑스는 분명히 승리할수 있었으며, 베트남은 강자에 대항하는 약자의 전술, 즉 게릴라전을 추구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소규모 전쟁"을 의미하는 스페인어에서 나온 말인 게릴라는 (나폴레옹전쟁당시 스페인) 결정적인 전투에서 그들보다 강력한 적을 패배시킬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대신 그들은 직접적으로 적군과 교전하지 않고도 적군을 제압할 목적을 갖는 일련의 소규모 작전에 의존한다. 일단 적군이 그들의 우세한 힘을 가동시키면 게릴라는 치고 빠지는 식으로 차단해 가면서 전장을 재래식 군대에게 넘겨준다. 재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