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 안할트-열강진입
혁명2.01 노에딧/노치트 베리하드/노말
일단 안할트를 보면 상당히 적은 인구와 바다가 없는 환경. 주위에 있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포스가 있을 것이다. 일단 목표를 삼아 볼 만한 국가는 크라코프와 이탈리아소국, 덴마크와 홀슈타인정도.
인구가 적으니 일단 개혁이나 해서 기본세팅을 맞춰 보았다.
입헌군주국으로 탈바꿈 -영국에게 잘 보일려고 ..
그런다음 군사기술위주로 연달아 개발 .. 전략적기동성 개발이 끝나가고, 조미니식 사고 이벤트가 뜬 후에 침공을 위한 준비를 한다. 동원령 내리고 일단 보병으로 2개 사단 증설 .. 총3개사단으로 크라코프를 일단 합병한 후.. 이탈리아 소국 근처에 가서 모데나에게 선전포고 ..
교황령이 참전하지 않아 모데나,루카,파르마 이 세국가와 싸워서 무난히 승리했다. 모데나는 땅한개와 위신실추,배상금 ,, 루카는 위신실추 파르마는 합병 이렇게 끝이 났다.
이탈리아 소국과의 전쟁
그러나 그 이후 파산을 막기위해 보유한 물품들을 모두 처분하고, 세금을 일시적으로 올리고, 지출을 줄이는 긴축재정을 해야 했다. 그 결과 빚은 1000이하로 줄어들었고, 여유가 생겨서 수송선5척 건조와 보병사단3사단창설을 할 수 있었다. 물론 파산하지 않도록 한 범위내로 조절하면서 한 결과다.
희망을 가지고 보병5사단은 중국의 수도를 점령 배상금과 위신실추를 얻어내었다.
빚의 압박으로 조마조마했다. 거의 -9000을 넘어 1만에 가까웠으니..
그리고 미국견제를 위해 안할트군은 텍사스를 합병한다. 물론 클레임 목적도 있었다.
바로 영국과의 관계개선으로 200을 만든 안할트는 영국이 개발하지 않은 기술2개와 클레임으로 치타공과 클레임1개를 교환하게 된다.
치타공이 그냥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 나서 안할트는 본격적인 식민사업에 뛰어든다. 우선 안남을 침공하여 캄보디아를 합병 안남의 영토 거의 전부를 빼았았으며, 네자드를 침공하여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영토를 빼았고, 마지막으로 조금 강력한 이집트를 침공하여 이집트의 양보를 이끌어 낸다.
그리고 나서 뛰어오르는 맨파워.. 즉시 보병사단을 해체하고, 네이티브경기병사단으로 교체하며 총15사단을 창설한다. 함대도 수송선15척으로 증강
안할트는 군사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홀슈타인을 침공. 덴마크와 홀슈타인으로부터 자국의 영토를 되 찾아 왔다. 그리고 교황령 침공으로는 교황령의 속국화와 배상금을 얻어내게 된다.
일단 교황령 속국화 그런다음 방위동맹을 공수동맹으로 바꿈
이때쯤 오스트리아와의 관계도 좋아져서 통행권을 얻어 냈다.
그리고 영국과의 두 번째 거래 이번에는 텍사스 지역,클레임한개와 프리타운(귀금속산지),클레임두개의 교환이 이루어졌다.
영국의 미국 남부진출
1850년 안할트는 이제 때가 도래했음을 느꼈다.그리하여 중국을 침공하여 세 개지역을 할양받은 뒤(탕산,텐진+철산지1개).. 투 시칠리아를 침공하여 유황산지를 빼았고, 속국화와 배상금을 요구했으며, 네자드를 합병 하였다가 독립시켜주어 우군으로 만들었다.그리하여 빛나는 안할트의 위신과 군사력에 세계는 안할트를 열강으로 인정하였다.
시칠리아 유황산지획득
열강 안할트
폭약공장만 두개인데 적자를 내서 일단 직공투입을 미루고 있습니다.(바보 자본가) 정당 바꿔서 산업화로 나아가야 겠습니다.
1859년 산업화이후의 안할트